목록나 좋은 사람 아닌데요 (8)
하오의 파도
1. 오래 묵혀두었던 감정들을 마주하고 그간 잃어버렸던 사색의 고리들을 뒤적거리고자 기억의 서랍속에 묵혀두었던 블로그를 열어본다. 현실에 적응하다보니 쓰는 삶을 미쳐 붙잡지 못한 내가 미워서 한탄하는 감정이 숱한 날을 스쳐지나갔다. 깊이 고민하려 해도 더 이상 머리와 감정이 말랑말랑하지 못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메타인지만 높아졌다랄까. 그럼에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다시 찾아왔으니 어찌나 감사한지. 애써 노력하기 보단 사실의 연속과 생각의 조각들을 하나하나씩 내려놓고 가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2. 애착이 가는 동생이며 아주 진국이고 미친 또라이인 현근이가 어제 교회에 왔다(나는 또라이 애착가이다). 미니멀리즘의 그 현근이 말이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현재 교회를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오라고 불렀더니 ..

'천로역정' 책을 읽으면서 크리스천의 순례와 내 삶의 방향성을 같은 직선위에 올려놓는다. 솔직히 이 책을 그렇게 기대하면서 독서모임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는데, 역시나 뛰어나신 하나님의 타이밍은 나에게 적절한 시기에 순례의 길 위에 고민하고 무너지며 다시 일어나는 주인공을 보여주신다.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두려울 정도로 놀랍다. 이 책이 나에게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하여 두 챕터씩 나눠 읽는데, 빨리 읽지 않아서 더 오래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순례의 처음에도 있으며 중간에도 있기에(아직 끝챕터는 멀었다). 이 책을 읽은 건 처음이지만, 이 책의 존재에 대해선 문학전공자라면 접해봤을 터이다. 그래서 책의 서문에 글의 형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을 만났을 때에 내가 듣고 배웠던 것들이 생각나면서, 나의..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일전에 나눴던 자료를 우연히 발견했다. 무슨 자신감이 들었는지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교회에서 그렇게 나누게 되었다. 내가 예전에 이런 생각도 했었나 싶고 말하다 보니 내 안에서 정리되는 느낌. 내 지식이 자랑과 교만의 통로가 될 것을 우려하였으나, 읽다가 멈칫멈칫 예수님 이야기에 먹먹해진다. 분명 나누고자 하였는데 내 안에 깊게 짙어져있다. 예수님의 진짜 진심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불쌍한 종을 사용해주신 것에 그저 감사.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 왕왕 사랑합니다.
내가 이런 글을 쓰지 않은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 이야기가 곧 나의 아내의 이야기이며 암실과 구름 속을 걷는 아내의 말과 모습을 과연 내가 남길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 아내를 탓하는 것이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마음을 열기 전에 바로 백스페이스를 끝까지 눌렀을 것이고, 아내를 들어낼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의 사랑은 아내의 마음과 상관없이 늘 일정하다고 말하겠다. 아내와 하나가 되고 있으면서도 하나가 될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내가 어루만질 수 없는 마음들을 과연 내가 용기를 내어 짚어낼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차라리 나는 내 눈을 감으며 내 생각과 표현을 덮어버리고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옳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덮어내다 보니 나의 눈을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눈을..

아내를 보내고 왔다. 이 집에서 같이 산지 딱 반 년이 되었고 아내는 잠시 머나먼 나라로 떠났다. 하루 종일 공항에서 같이 보내면서 아내랑 같은 마음이고 싶다가도 이내 마음을 토닥토닥 안아주고 또 이내 위로받는 그런 날이었다. 기차에서 오늘 찍은 사진들을 보는데 뒤숭숭한 마음이 정리가 안되더라. 육개월 동안 우리 사진 많이 안찍었구나 싶다가도 그럴만큼 바쁘게 살았지 싶다. 집에 도착하니 뭉쳐놓았던 마음이 툭 하고 떨어졌다. 같이 쓰던 집인데, 이제 더이상 아내의 걱정스러운 머리카락도 떨어져있지 않고, 빨래도 이틀에 한번 안해도 되고, 옷장도 훵하니 비어보이고, 이불도 베개도 하나만 필요한 집이 되어버렸다. 설거지는 반으로 줄거고 요리도 그만큼 덜하게 되겠지. 제일 울적한 점은 아내 없는 방에서 나는 아무..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지난 블로그를 지우게 되었지만, 사실 그보다 최근에 일기장 조차 적는 것이 어색해져버린 나에게 다시금 어색해졌고, 그 연유를 다시 찾아보고자 용기를 내었다. 지난 일들을 적어낼 때에는 소량의 우울과 슬픔을 담아내는 것이 꽤나 흡족했고 돌이켜 보면 내가 이런 말도 했었나 놀라기도 했던것 같은데, 이제는 다정한 남편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이전과 같은 감정을 해소하는 것에 마음을 쏟고자 한다. 그러니까 감정에 매이지 않겠다는 사소한 결심이며, 적다보면 자연스러워질 모습들을 기대하는 일렁이는 마음에 교만떨거나 미리 지레 겁을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읽는 시간이 늘어갈 수록 나를 투영해보기도 하고 표현에 여유를 더해보기도 할텐데, 최근에는 내가 읽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읽고 싶지도..